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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이 체결된 곳, 덕수궁 중명전

by 가람풍경 2025.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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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연휴에 덕수궁을 관람했는데요.

무료관람이라 많은 나들이객들이 찾고 있었습니다.

 

오후 늦게 가서 낮 풍경과 야간개장까지 관람하고 왔고,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을 걸으니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한 날이었습니다.

 

대한제국의 황궁, 가을로 접어드는 덕수궁

가을의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을 걷다 보니 덕수궁 담장 밖에 덕수궁 건물이 하나 있는데요.

덕수궁 북쪽에 있는 이 전각의 이름은 덕수궁 중명전이라고 하더군요.

 

덕수궁 중명전은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졌고, 1904년 대화재로 고종의 임시거처로 사용된 곳이면서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늦은 시간에 가다 보니 전시관 관람은 못하고 밖에서 그 풍경만 구경하고 왔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정동길에 들어서자 우측 골목에 덕수궁 중명전 표지가 있어 들어갔습니다.

 

중명전은 ‘광명이 계속 이어져 그치지 않다’라는 뜻으로, 1897년 단층규모의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진 후 수옥헌이라고 불리던 곳입니다.

(특이하게 명자를 明이 아닌 眀으로 썼는데 '밝게 볼 명'으로 부르는 한자라고 합니다)


1904년(광무 8) 대화재로 고종이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사용하면서, 편전 겸 접견소로 이용하였고, 수옥헌이 중명전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06년 이후입니다.
1905년(광무 9)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며, 일제강점기 이후 민간에서 활용하다가, 2009년에 복원공사하여 2010년에 전시관으로 개관하고 있습니다.

 

중명전 외에도 환벽정, 만희당 등 10여채의 전각들이 있었으나 1920년대 이후 중명전 외의 건물들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덕수궁 중명전 관람안내

 

관람시간 09:30~17:30(17:00까지 입장가능)

휴관일(휴무일) 매주 월요일

관람료(입장료) 무료

 

덕수궁의 별전으로 대지만 727평, 건평은 236평에 이르는데요.

덕수궁 본궁과는 돌담벽 사이로 떨어져 있습니다.

 

원래 중명전이 있는 이곳은 덕수궁 궁역이 아니었는데요.
1884년(고종 21년) 미국 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뉴턴 알렌이 마련한 곳으로, 이 일대는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등 선교사들이 모여 살았던 동네였다고 합니다. 

1886년(고종 23년)부터는 독신 여성 선교사들의 거처로 변모했고, 1887년(고종 24년)에 알렌이 미국으로 돌아간 후 미국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인 애니 앨러스가 여성 교육기관인 정동여학당(현재의 정신여자고등학교)을 세웠습니다.

정동여학당은 1895년(고종 32년)에 연지동으로 옮겨갔고, 1897년(광무 원년) 대한제국 정부에서 부지를 사서 덕수궁 영역에 포함시켰고, 기존 건물을 없애고 그 자리에 서양식 도서관인 수옥헌을 지었던 것입니다.
미국인 건축기사 다이가 설계감리를 했다고 합니다.

 

수옥헌은 완공 이후 도서관으로서 수많은 황실의 서책들과 보물들을 보관하는 장소가 되었고, 그 외에도 독일의 알베르트 빌헬름 하인리히 친왕 접견 등 외국의 주요 인사들을 맞이하는 공간으로도 쓰였습니다.

1901년(광무 5년) 11월에 수옥헌 일곽의 건물 한 채에서 불이 나 수옥헌은 소실되고 말았고, 러시아 건축기사인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세레딘사바틴의 설계 감리 하에 2층 벽돌 건물로 재건했습니다.

1904년(광무 8년) 4월에 덕수궁 본궁에서 화재가 발생해 고종이 이곳에 기거하면서 편전 겸 침전으로 활용했는데요. 
이후 1907년(광무 11년)에 고종이 강제퇴위당하고 순종이 즉위할 때까지의 약 3년 동안 사실상 대한제국의 실질적인 황궁 기능을 담당했던 곳입니다.


그리고 1905년(광무 9년) 11월에 이토 히로부미와 을사오적이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에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보호국으로 전락하여 사실상 반식민지가 되는 을사조약을 여기에서 강제체결했던 비운의 장소였습니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에는 덕수궁 궁역이 줄어들며 궁역에서 분리당했습니다. 
경성구락부가 인수하여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으로 썼고, 1925년에는 조리실 화재사고로 외벽을 빼고 전부 불타 재건했다고 합니다.

광복 후 국가소유로 관리했다가,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 귀국한 영친왕과 이방자 부부에게 중명전 사용권을 이양하여 영친왕 부부가 소유했으며, 영친왕이 사망한 이후 다시 민간에게 위탁, 매각됐습니다.

1983년에 중명전을 인수하여 서울시 유형문화재 53호로 지정했고, 2003년에 정동극장이 인수했지만, 앞뜰이 주차장으로 쓰이고 건물 지하는 폐건물처럼 방치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후 2006년에 문화재청에서 소유했고, 2007년 2월에 사적 124호 지정으로 덕수궁 궁역으로 재편입, 이후 고증을 통해 대한제국 시기의 모습대로 복원해 2010년 8월에 일반에 개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을사조약 및 헤이그 특사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1층에 제1실 '덕수궁과 중명전', 제2실 '을사조약의 현장', 제3실 '을사조약 전후의 대한제국', 제4실 '대한제국의 특사들' 등 총 4개 실로 전시실을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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