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동구릉은 서울 동쪽에 있는 9기의 조선왕릉(15개의 봉분)이라는 의미로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이곳에 잠들어 있어 조선왕릉이 제일 많은 곳입니다.
아울러 원이나 묘가 아닌 왕릉만 있는 곳이 바로 동구릉이기도 합니다.
1408년(태종 8)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건원릉이 처음 조성되었고, 이후 문종의 현릉, 선조의 목릉, 현종의 숭릉, 장렬왕후의 휘릉, 단의왕후의 혜릉, 영조의 원릉, 헌종의 경릉이 차례로 조성되었습니다.
당시 능의 개수에 따라 동오릉, 동칠릉으로 불리다가, 1855년(철종 6) 추촌 문조(효령세자)의 수릉이 이곳에 옮겨지면서 동구릉이 완성되었습니다.
[조선왕릉] 조선왕릉이 가장 많은 구리 동구릉(입장료 및 주차장 정보)
오늘은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과 그의 첫 번째 비인 효현왕후, 두 번째 비인 효정왕후가 잠들어 있는 동구릉 경릉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경릉은 동구릉 서쪽 제일 안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과 첫 번째 왕비 효현황후, 두 번째 왕비 효정황후의 삼연릉입니다.

동구릉 경릉 입구
헌종(1827~1849, 재위 1834~1849)은 추존 문조와 신정왕후의 아들로 1834년 아버지(문조)가 요절하고 할아버지 순조가 승하하자 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할머니인 순원왕후(안동 김씨)의 수렴청정을 받았는데 당시 외척들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해 왕권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랐습니다.
친정을 시작한 후에도 세도정치를 견제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 15년 재위기간 중 별다른 업적 없이 22세의 젊은 나이에 눈을 감았습니다.
순조 때의 천주교 탄압정책을 이어받아 주교 앵베르, 신부 모방, 샤스탕 등 많은 신자를 학살(기해박해)했고, 1846년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을 처형했습니다.

동구릉 경릉 홍살문
홍살문은 능이나 원, 묘, 궁 등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나무 문으로, 지붕 없이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웠고, 그 중간에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습니다.
홍살문이 있다는 것은 이곳이 신성한 곳이니 격식이나 예절을 갖추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효현황후 김씨(1828~1843)는 영흥부원군 김조근의 딸로 1837년(헌종 3) 10살에 안동 김씨 가문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왕비로 간택되었습니다.
헌종의 첫 번째 왕비로 성품이 단정하고 온화하며 왕비로서 손색이 없었으나 아이도 없이 6년 만인 16살에 갑자기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조산왕릉에는 정자각을 바라보면서 왼쪽에는 수라청이, 오른쪽엔 수복방이 있는데요.
경릉에는 수복방만 복원되어 있습니다.
수라청은 재실에서 준비한 제례음식을 데우고 진설하는 곳이고, 수복방은 능원을 지키는 사람이 머무는 공간입니다.
효정황후 홍씨(1831~1904)는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딸로 1843년(헌종 9) 효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에 헌종의 두 번째 왕비로 책봉되었고, 1897년 대한제국 선포 후 태후가 되었고, 헌종과 효현왕후, 효정왕후는 황제와 황후로 추존되었습니다.
효현왕후 사후에 삼간택까지 올랐던 경빈 김씨에게 마음을 빼앗겼지만, 대비들이 용납하지 않고 효정왕후를 간택하자 헌종은 철저히 외면했고, 경빈 김씨를 후궁으로 맞이해 창덕궁 낙선재에 따로 살림을 차리기도 했습니다.
헌종이 일찍 승하하면서 19세에 홀로 되었고, 이후 명헌대비가 되었습니다.
철종, 고종, 순종에 이르기까지 조선이 무너지고 대한제국이 들어서는 격동의 역사를 모두 지켜보며 73세까지 장수하다가 외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멀리서 바라본 경릉의 삼연릉, 잘 보이지 않아 묘 2개만 찍혔네요.
왼쪽이 헌종, 가운데가 효현왕후, 오른쪽이 효정왕후의 능입니다.
경릉은 헌종과 두 왕후의 봉분 3개가 나란히 놓인 모습으로 조선왕릉 중 유일한 삼연릉입니다.
1843년 효현황후의 능이 조성되었고, 1849년 왼쪽에 헌종의 능이,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1904년 효정황후의 능이 가장 오른쪽에 조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로써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남편과 두 아내'가 나란히 누운 세 개의 봉분이 완성되었습니다.

경릉의 정자각(보물)
정자각은 제향을 올릴 때 왕의 신주를 모시던 곳으로, 위에서 봤을 때 丁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제향음식을 차려놓는 정전과 제례를 올리는 배위청이 합쳐진 전각입니다.
경빈 김씨(1832~1907)는 1847년(헌종 13)에 순원왕후가 후사가 없자 간택하여 후궁으로 들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빈 김씨도 후사가 없었습니다.
헌종 13년 (1847) 10월에 입궁하여 2년 후 헌종 15년(1849) 6월 헌종이 승하할 때까지 짧은 기간이었지만, 김씨는 헌종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고, 헌종은 김씨를 위해 창덕궁에 500칸이 넘는 낙선재를 지어 자신과 경빈의 사랑채로 사용했고, 같은 창덕궁 내에 석복헌을 지어 경빈의 처소로 쓰게 했습니다.
1849년(헌종 15년) 헌종이 승하하자 순원왕후, 신정왕후, 효정왕후에게 예를 다하면서 검소하게 생활했습니다.
1907년(광무 11년)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묘소는 서삼릉 내 귀인묘역에 있다고 합니다.

경릉 정자각에서 바라본 진입로 모습

경릉 정자각 제향공간

경릉의 기신제는 매년 7월 25일입니다.

경릉의 비각

경릉 비문
왕릉의 비각에는 왕과 왕비의 생애, 시호, 업적, 능의 조성 기록 등이 새겨진 비문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한문으로 기록되었으며, 조선 왕실의 권위와 유교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생전에는 안동 김씨의 기세에 눌려 뜻을 펴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경빈 김씨)과도 온전히 함께하지 못했던 헌종.
그리고 평생 남편의 외면 속에서 고독하게 구한말의 비극을 버텨내야 했던 효정왕후.
동구릉의 경릉은 비록 살아서는 서글프고 엇갈린 인연이었을지라도, 죽어서는 거대한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영원히 함께 정답게 누워있는 듯한 묘한 여운을 주는 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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