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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 터 및 화가 고희동과 안중식 작품활동 터(수송공원)

by 가람풍경 2025.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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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조계종 총본산 사찰인 조계사 옆에는 자그마한 수송공원이 있습니다.
얼핏 보면 평범한 도심 속 공원이지만, 이곳은 독립운동과 3.1운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고, 근현대사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입니다.

3.1 운동 당시 2만 장의 독립선언서와 1만 장의 독립신문을 비밀리에 인쇄한 보성사 터가 있고요.
보성사 사장이 비밀리에 독립선언문을 인쇄했던 독립운동가 이종일 선생의 청동입상,
독립운동가 양성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여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신흥대학 터(경희대학교 전신),
여성 교육을 통해 항일 운동을 전개했던 숙명여학교,
국내외 독립운동 소식을 연결하여 항일 언론의 역할을 했던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 터가 있습니다.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 터와 경희대학교 전신인 신흥대학 터(수송공원)

 


뿐만 아니라 화가 안중식 선생이 말년에 작품활동을 했었던 곳이기도 하고,
고희동 선생이 1910년대에 작품활동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수송공원에 있는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 터 화가 안중식과 고희동이 작품활동을 했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종로구 수송공원 모습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터, 화가 심전 안중식 표석, 화가 고희동 표석, 이종일 선생 동상, 신흥대학 터, 숙명여학교 터, 중동학교 옛터 등이 있는 작은 공원입니다.

 

종로 수송공원과 목은이색선생 영당

 

 수송공원에 있는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 터

 

대한매일신보는 영국인 베델을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하여 한글과 영어 등 양국어로 창간한 일간 신문인데요.

1904년 7월 18일 서울 전동(지금의 수송동)에서 양기탁을 총무로 하여 창간했습니다.

당시 영국인을 발행인으로 내세운 이유는 일본이 영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어서 대한제국의 신문에 대한 사전검열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주필에는 박은식이 활약했고, 그 밖에 신채호, 최익, 장달선, 황희성 등이 필진으로, 임치정, 안태국 등이 경영에 참여했다고 하는데요.

국난을 타개하고 배일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해 고종의 은밀한 보조를 비롯해 신민회의 수뇌부들이 대거 참여해 발행했고, 사실상의 기관지 역할을 했습니다.

10대 중앙 종합 일간지인 서울신문의 전신입니다.

 

 

당시 발행된 대한매일신보는 종전의 것보다 큰 세로 40㎝, 가로 27㎝의 타블로이드판 6면으로 국문 2면, 영문 4면으로 구성됐습니다.
영문이 들어간 이유 역시 영국인과 합작한 한영합판의 조직체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본군의 사전검열을 받지 않는 유일한 신문으로 사실 그대로 의병운동을 보도하며 항일운동의 선봉에 섰고, 당시 우리 국민에게 커다란 용기와 위안을 주었다고 합니다.

일본은 베델과 양기탁을 구속 또는 국외로 추방하기 위해 갖은 방안을 갈구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런 과정에서 베델(배설)이 물러나고 비서였던 영국인 만함이 사장이 되었습니다.
1910년 만함은 갑자기 판권 일체를 전 사원이었던 이장훈에게 금 4만 원에 매도하고 우리나라를 떠나버렸습니다.

결국 통감부 손에 들어간 대한매일신보는 경술국치 다음날부터 ‘대한’의 두 자를 떼어낸 채 매일신보가 되어 총독부기관지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매일신보는 1945년 11월 10일 정간 처분이 내려졌고, 이후 서울신문이란 이름으로 변경해 1945년 11월 23일자 석간부터 속간하고 있습니다.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은 항일운동을 펼치다가 1909년 심장병으로 병사해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고, 2016년엔 베델 선생의 후손인 손자 토머스 오언 베델과 증손녀 메건 베델, 손녀 수전 제인 블랙이 광복 71주년을 맞아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터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수송공원 옆에 담장 너머 있는 한옥은 목은 이색선생 영당이 있습니다.

 

영당이란 신불을 모시는 당을 말하고, 조선시대에 성리학을 고려사회에 도입하여 사대부에 확산시켰던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으로 알려진 인물인 목은 이색(1328∼1396)의 영정을 보관하고 있는 사당입니다.

 

종로 수송공원과 목은이색선생 영당

 

화가 심전 안중식(1861~1919)

종로구 청진동 258은 안중식 선생이 말년에 작품활동을 했던 곳입니다.

 

조선말, 대한제국기에서 일제강점기 초까지 활동한 화가 안중식(1861–1919, 호 심전) 은 도화서(궁중 화원) 출신으로 조선 궁중회화의 마지막 세대이자, 근대 한국회화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다리로 평가되는 화가라고 합니다.

그는 장승업 등에게 사사했고, 궁중과 고관들의 의뢰로 초상, 산수, 화조를 폭넓게 그렸습니다.

 

심전 안중식은 전통과 근대를 잇고, 스승과 제자를 잇고, 궁중과 민간을 잇는 연결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말년에 수송동 일대는 당시 서화가와 제자들이 드나들던 곳이라고 합니다.

안중식은 1918년 서화협회 초대 회장에 선출된 바 있고, 조선 후기에 산수도, 성재수간도, 도원문전도 등을 그렸습니다.

 

화가 고희동(1886~1965)

고희동 화가가 1910년대 작품활동을 했던 곳입니다.

 

춘곡 고희동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일본 유학 후 서양화 기법을 도입, 교육하며 근대 한국미술의 길을 연 인물입니다. 
북촌 원서동 자택(현 고희동 가옥/미술관)에서 작업과 강습을 이어갔는데, 원서동 가옥을 마련하기 전에 이곳 수송공원 일대에서 작품활동을 진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정자관을 쓴 자화상, 부채를 든 자화상,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등의 작품을 그렸는데요.

당시 당대의 대가로 불린 안중식과 조석진 문하에 드나들며 화가를 시작했고, 일본 유학 후에 최초의 사양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18년 최초의 한국인 서화가들의 모임이자 근대적인 의미의 미술 단체인 서화협회를 안중식 등과 함께 결성했습니다.

(초대회장 안중식, 총무 고희동)

 

우리나라 최초의 사양화가인 원서동 고희동가옥과 고희동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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