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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탁호텔, 이화여고에 남아있는 근대 호텔의 기억

by 가람풍경 2025.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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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3인 딸애는 요즘 고등학교 진학을 고민하고 있는데요.

외국어에 재능이 있다는 생각에 이화외고를 목포로 정하고, 지난번에 이화외고 입시설명회를 다녀왔습니다.


이화학원은 1886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였던 메리 스크랜턴에 의해 설립된 이화학당을 모체로 발전한 여성 교육기관이자 재단인데요.
광복 이후 1945년에는 전문학교 과정이 이화여자대학교로 승격했고, 현재 이화학원 산하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 이화여자중학교, 이화유치원 등이 있습니다.
자사고인 이화여고에서 분리해 외국어 특목고인 이화외고를 별도로 설립한 것 같습니다.

 

입시설명회가 끝나고 이화외고와 이화여고 캠퍼스를 탐방했는데요.

대학 캠퍼스 못지않게 예쁘고 무척 큰 학교를 보다 보니 이화외고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해진 것 같습니다.

 

캠퍼스 탐방을 하다가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 앞에 손탁호텔 터라는 표지석이 있어서 잠시 알아봤습니다.

 

정동길에 있는 이화여고 정문

 

정문 옆에는 1923년 대문으로 사용했던 이화 사주문이 있는데요.

이화학당이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면서 일본풍으로 교란되었던 양식을 복원한 대문이라고 합니다.

 

 

이화외고와 이화외고는 원래 이화여고 캠퍼스였다가 아화외고가 생기면서 캠퍼스도 두 곳으로 분리되었는데요.

물론 두 학교 간의 경계는 없이 한 캠퍼스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화외고는 서대문역 5, 6번 출구에서 정문으로 진입할 수 있고, 이화여고는 덕수궁 옆 정동길을 통해서 정문으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두 캠퍼스는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해서 어디로 출입해도 이동할 수는 있습니다.

 

가을 단풍이 예쁜 이화외고, 이화여고 캠퍼스 풍경

 

손탁호텔 터가 있는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

 

바로 앞엔 1915년 건립한 심슨기념관(이화박물관)이 있는데요.

이화학당 당시부터 현재까지 이화학원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이화박물관] 우리나라 여성교육의 역사, 이화학당

 
1975년의 화재로 철거된 프라이홀 자리에 건립한 교육관으로 서울 중구 정동길 이화여고 동문 옆에 있습니다.

화재로 철거되기 전까지 프라이홀은 구 손탁호텔을 대신하여 기숙사와 실험실, 교실 등으로 활용되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 자리는 손탁호텔이 있던 터라고 하는데요.

손탁호텔 터는 대한제국과 근대 서울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자리이자, 한때 서울 최초의 서양식 호텔 가운데 하나인 손탁호텔이 서 있던 장소입니다. 

 

손탁호텔은 1902년 정동에 지어진 서양식 호텔입니다.

대한제국 고종이 덕수궁 옆 황실 소유의 가옥과 토지를 하사하고, 당시 궁정의 신뢰를 받던 앙투아네트 손탁(Antoinette Sontag)에게 운영을 맡기면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객실 25개 규모의 2층 건물로, 1층에는 주방과 식당, 커피하우스(한국 호텔 최초의 ‘다방’)가 있었고요.

2층에는 국빈과 귀빈용 객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설계는 러시아 건축가 세레딘-사바틴이 맡았고, 외국 사절과 국내 인사들이 모이는 근대적 사교와 외교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호텔 명칭은 1909년부터 공식적으로 ‘Sontag Hotel’을 쓰기 시작했고, 그 무렵 손탁은 지분을 정리해 한국을 떠났습니다.

이후에도 한동안 운영이 이어지며 정동 사교문화를 상징했고, 훗날 영국 총리가 되는 윈스턴 처칠 등 서양 인사들이 묵었다는 기록과 한국 근대 언론, 외교 인사들의 교류가 이어진 공간이었습니다.

 

 

손탁호텔은 1917년경 이화학당(이화여자고등학교의 전신)에 매각되어 여학생 기숙사로 바뀝니다. 

이후 1922–1923년경 철거되고 더 큰 기숙사(프라이홀 등)로 대체되면서 건물 자체는 사라졌습니다.

 

손탁호텔은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개항기 서울의 외교와 문화 네트워크가 교차한 장소였습니다.

궁정 연회와 각국 사절단 환영이 이루어진 ‘정동의 살롱’이자, 근대 도시 공간 속 카페 문화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였죠.

 

건물은 사라졌지만, 호텔이 남긴 네트워크와 기억은 정동–덕수궁–정동길–이화학당(이화여고)를 잇는 스토리로 오늘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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