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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수송공원과 목은이색선생 영당

by 가람풍경 2025.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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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청 구내식당에서 식사 후 후문 방향으로 나오니 바로 주차장 맞은편에 홍살문이 있더군요.

도심 중에서도 중심에 웬 홍살문이?

 

다름 아닌 목은이색선생 영당이 있는데, 이곳엔 목은 이색 영정이 보관되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대한매일신보 창간 사옥터, 화가 심전 안중식 표석, 이종일 선생 동상, 신흥대학 터, 숙명여학교 터, 중동학교 옛터 등이 있는 수송공원이 있더군요.

공원은 무지 작은데 근대역사의 무대로 많이도 사용한 곳이었습니다.

 

종로 수송공원과 목은이색선생 영당 모습을 담았습니다.

 

종로구청 임시청사 맞은편에 있는 홍살문

홍살문에는 '목은선생영당'이라고 적혀 잇습니다.

 

영당이란 신불을 모신 당을 말하며, 우리가 역사시간에 익히 들어왔던 목은 이색의 영정을 보관하고 있는 사당입니다.

 

목은이색선생 영당 앞에 있는 리마빌딩 대림빌딩

대림빌딩은 종로구청 신청사 공사로 이곳에 임시 청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고물가에 구내식당을 많이 찾는다고 하는데요.

종로구청 구내식당은 가격이 6,000원으로, 맛까지 좋아 가성비는 물론 가심비까지 갖춘 식당이더군요.

 

고물가에 맛집 된 구내식당, 종로구청 구내식당

 

그리고 목은이색선생영당 진입로 옆에는 서울지방국세청이 있습니다.

1층엔 국세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국세홍보관이 있습니다.

 

세금에 대한 모든 것, 서울지방국세청 국세홍보관

 

이렇듯 홍살문이 있는 목은이색선생영당이 있는 곳은 서울 도심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라 이런 사당이 있다는 게 다소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ㅎㅎ

 

서울지방국세청 건물 오른쪽의 조그만 골목을 따라 걸어 들어갑니다.

 

목은선생영당이라고 적힌 삼문

입구에는 목은관이라는 한산 이씨 종친회 건물이 있고, 이곳에서 관리하고 있는 사당인 듯합니다.

 

영당은 문이 닫혀 있어 실제 영정은 볼 수 없었습니다.

 

 

목은 이색(1328~1396)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삼은으로 알려진 인물로, 고려시대 말 문신이자 학자로 조선의 사상적 기초를 닦은 인물 중 한 명입니다.

본관이 한산, 시호는 문정이며, 성리학을 고려사회에 도입하여 사대부에 확산시켰습니다.

 

고려말 혼란기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정도전 등 신진세력과 갈등을 겪으며 성리학의 큰 스승이었습니다.

 

이색(1328∼1396) 영정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현재 영정은 조선시대 화가에 의해 옮겨 그려진 것으로 4본 5점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모두 보존상태와 수준이 높아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습니다.

 

1526년(중종 21)에 5대손 이유청이 영당을 짓고 초상화를 모셨다고 하는데요.

1755년(영조 31)에는 후손 이수옥과 화공 변상벽이 2본의 초상을 모사하여 그중 1본은 서울 수진동 영당에, 다른 1본은 문헌서원에 모셨습니다.

 

1871년에 문헌서원이 문을 닫자 영모리에 영당을 짓고 모시던 것을 지금의 영당으로 새롭게 단장한 것입니다.

 

(목은 이색의 초상(보물 1215호) - 목은 영당본 - 국가유산청)

목은 영당본은 용산구에 있다고 하니, 이곳에 있는 초상은 진품이 아니란 예기겠지요...

 

보물로 지정된 목은영당본은 가로 25㎝, 세로 25.8㎝ 크기의 소본과 가로 81.6㎝, 세로 149.8㎝ 크기의 대본입니다.

소본은 1654년 그린 것으로 현재는 반신상이지만 잘려나간 곳을 감안하면 전신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본은 1711년에 옮겨 그려졌습니다.

(아틀라스 뉴스 - 고려말 학자 이색 돌아보는 수송동 목은영당 인용)

 

 

이곳에 있는 이색 영정은 사모를 쓰고 홍색 단령을 입은 채 교의에 앉아 있는 전형적인 문관 초상화라고 합니다.

아래로 처진 가늘고 긴 사모의 각은 고려말 복식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필선 위주로 얼굴의 윤곽과 주름살을 표현했고, 이마와 코, 뺨에 약간의 홍색을 더했습니다.

옷주름 역시 붉은 필선으로 표현하는 데에 치우쳐 평민적인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얼굴의 반점과 흰 수염을 통해 노년기임을 알 수 있고, 화면 우측에 양촌 권근의 찬문과 후손 이정기의 글이 적혀 있습니다.

(현장 설명문에 적힌 내용임)

 

이색영당을 들어가지 못하고, 초록이 무성한 그 윗길로 이동하면 수송공원이 있습니다.

 

산책로에서 바라본 목은선생영당

 

바로 옆에 수송공원이 있고, 이곳은 대한매일신보 창간사옥터가 있습니다.

 

수송공원은 수송동에 있는 200여평이나 될까 말까 하는 작은 공원이고요.

근대화시기에 여러 기관이 있던 터입니다.

 

그중에서 대한매일신보는 1904년 7월 18일에 창간한 대한제국의 신문인데요.

1902년(광무 6년)에 한국에 온 영국인 기자 어니스트 베델(배설)이 양기탁 등 민족 계몽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지원을 받아 창간한 신문입니다.

 

신민회의 수뇌부들이 대거 참여해 발행했고, 사실상의 기관지 역할을 했습니다.

10대 중앙 종합 일간지인 서울신문의 전신입니다.

 

수송공원 모습

 

심전 안중식(1861~1919) 표석

 

안중식은 조선후기와 일제강점기의 화가로 한국 최초의 화가라는 춘곡 고희동 등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종로구 청진동 258(세종대로 중간지점)은 안중식 선생이 말년에 작품활동을 한 곳으로 그 역사성을 기념해 표석을 세운 것입니다.

 

[북촌한옥마을] 원서동 고희동 가옥 및 고희동 미술관

 

세움말

대한민국 종교계와 문화관광부가 3.1 운동 80주년을 맞아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인쇄했던 이곳 옛 보성사 터에 세운 기념물입니다.

 

보성사 터

1919년 3.1 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비밀리에 인쇄한 천도교의 보성사가 있던 곳입니다.

 

기독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문화관광부가 함께 세운 것이네요.

 

중간에 등나무가 있는 이 기둥은 무엇일까요?

 

수송공원 바로 앞에는 조계사가 이웃하고 있습니다.

 

불기 2569년 부처님오신날, 대한불교 조계종총본산 조계사

 

옥파 이종일 선생 동상

 

구한말 관리 및 개화사상가로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받은 독립유공자입니다.

 이승만, 유영석과 함께 순수 한글로 된 제국신문을 창간하기도 했고, 천도교에 입보 하여 천도교와 연계한 독립운동을 계획하기도 했습니다.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에 참여하여 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고 합니다.

 

신흥대학 터

 

일제강점기 서간도에서 독립군을 양성했던 신흥무관학교의 후신인 신흥대학이 1949년 3월 20일 정식 대학으로 인가받아 개교한 곳이 수송공원이라고 합니다.

신흥대학은 1955년 회기동으로 이전하여 1960년 경희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숙명여학교 터

수송동 80번지는 1906년 5월 22일 개교하고, 1980년 2월 강남구 도곡동으로 이전한 숙명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인 학교입니다.

 

중동학교 옛터

중동고등학교가 시작한 곳입니다.

 

이때 이곳은 앞에서 보았든 숙명여자고등학교와 중동고등학교가 붙어 있었다고 합니다.

수송동 교정 당시, 숙명여고는 중학교 건물과 담 하나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수송공원에서 보이는 목은선생영당

 

수송공원은 무척 작은 공원인데 근대회 역사에서 많은 의미 있는 출발점이었네요.

이에 비해 공원 주변 환경은 다소 열악해서 정리가 필요해 보이는 공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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