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역 보신각 앞에는 조선시대 죄인을 수감했던 감옥(오늘날의 교도소)인 전옥서 터가 있습니다.
이 감옥에서는 구한말 항일 의병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우리 역사에서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전옥서는 형조에 속하던 감옥으로 죄인에 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서였습니다.
남자 옥사와 여자 옥사로 구분되었고 수감된 죄수들은 대부분 상민들이었습니다.
때에 따라 의금부나 6조, 왕실의 계보를 편찬하고 왕족의 허물을 살피던 관아였던 종부시, 사헌부 소속의 왕족이나 양반, 관리도 수감되었습니다.
박해 시기 많은 천주교도들이 형조로 이송되어 심문을 받고 형이 집행되기 전까지 이 전옥서에 수감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천주교 103위 성인 중 전옥서에 수감되었다가 순교한 성인은 이호영 베드로와 김바르바라입니다.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인 김제준 이냐시오 성인도 의금부에서 형조로 이송되어 처형될 때까지 이곳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전옥서 터 맞은 편에는 종로타워가 있고, 그 앞에는 보신각 터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감옥이 보신각과 수십 미터 거리에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종로타워는 조선시대 운종가와 광통교가 보신각을 기점으로 교차하는 옛 시전행랑의 중심이었고, 일제강점기엔 화신백화점이 있던 자리에 1999년에 33층, 133m 높이로 건설되었습니다.
3개의 기둥이 고층부의 고리모양의 스카이라운지를 떠받들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이죠.
그동안 종로의 랜드마크 역할을 발휘해 왔으며, 2002년까지 국세청이 입주해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보신각(종각)은 고종 32년(1895) 보신각이란 사액을 내린데서 이름이 지어졌는데요.
태조 4년(1395)에 처음 지어진 후 4번이나 불타 없어지고, 8번에 걸쳐 다시 지어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9년 8월에 서울시에서 지은 것입니다.
당시 보신각종은 오전 4시에 33번, 오후 7시에 28번을 울려 도성의 문을 여닫고 하루의 시각을 알리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보물 옛 보신각 동종(보물 2호)은 조선 세조 14년(1468)에 만들어져 원각사에 있다가, 절이 폐사된 후 광해군 11년(1619)에 현재의 보신각 자리에 옮겨졌고, 지금은 균열이 생겨 경복궁 안에 종각을 지어 보관 중입니다.
지금 보신각에 걸려 있는 종은 1985년 국민성금으로 새로 만들어 그해 광복절에 처음 타종하였고, 매년 1월 1일 자정에 타종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형조, 한성부, 의금부 같은 심문 기관이 수사와 재판을 담당했다면, 전옥서는 그 과정 전후의 구금과 수감, 수형 집행 지원을 맡았던 것입니다.
피의자와 피고인, 수형자의 구금 및 관리를 했고 태, 장, 곤장 등 신체형 집행 지원과 노역형 배치를 협조했습니다.
또한 급식, 의약과 겨울철 난방과 전염병 방지 등의 위생 관리, 재판 기관 출정(신문)과 지방 형장, 노역지로의 호송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당시의 옥사는 지금처럼 인권 기준이 높지 않아 과밀했고 질병 문제가 빈번했는데, 이를 줄이기 위해 왕명으로 사면이나 감형, 겨울철 월동 대비 지시가 내려오곤 했다고 합니다.
갑오개혁(1894) 이후 근대 사법제도가 도입되면서 전옥서는 폐지수순을 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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