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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검찰청과 대법원 같은 권력기관, 의금부 터

by 가람풍경 2025.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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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의금부는 국왕 직속의 사법기관이자 공안기구로 반란과 역모, 관리의 중범을 비롯하여 유교적 강상범죄 등 나라와 왕실,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사건을 수사하고 심문, 처결하던 최고급 사법 권력기관이었습니다.

금부, 금오, 왕부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의금부는 지금의 대검찰청과 대법원 혹은 국정원이나 안기부 등과 같은 권력기관이었던 것입니다.

일반 사범은 형조에서 담당했지만, 의금부는 왕의 직접 명령과 관련된 사건을 전담한 부분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지난번 종로2가 사거리를 지나가다가 의금부 터를 봤는데요.

조선시대 의금부는 지금의 종각역 종로타워빌딩 맞은편 SC제일은행 본점 앞에 있었습니다.

 

왕의 명령이 내려지면, 한 관아가 움직였고, 조선의 의금부는 단순한 재판소가 아니었습니다. 
반역의 혐의가 걸린 자, 신분을 어긴 자, 그리고 때로는 권력의 적들이 모여들던 곳. 오늘은 조선 왕권의 칼끝이자 사법의 그림자였던 ‘의금부’의 탄생과 변천, 그리고 남긴 이야기들을 따라가 봤습니다.

 

옛 조선시대 의금부가 있던 터

 

의금부의 기원(시작)은 고려시대 순마소, 순군계통 권한에서 비롯된 기구들이 조선 초기까지 이어졌습니다.

태조부터 태종 대까지 여러 차례 명칭 변경이 있었고, 태종 대에 사법 전담기구로 성립해 기능이 분화되었습니다.

 

조선 중기까지는 양반 관료의 범죄, 역적과 반란 사건, 강상(신분질서 위반) 사건 등을 맡아 처결했고, 때로는 다른 법원의 판결을 재심하거나 시정하기도 했습니다. 
조선후기인 1894년 갑오경장 이후 이름이 의금사로 바뀌었고, 곧 고등재판소로 개편되는 등 일련의 법제 개편을 거쳐 1899년 평리원(근대 법원 체계)으로 정비되었습니다.

 

으뜸 벼슬이 종1품 판의금부사이고, 버금가는 벼슬은 정2품 자의금부사일 정도로 권력이 높았습니다.

 

의금부의 주요 권한과 역할은 피의자를 심문하고 추궁하는 추국, 유교적 가부장과 신분 규반을 위반한 강상 범죄처리, 관료와 양반의 범죄 심판, 국가의 안보와 왕권을 위협하는 역모, 반란, 외교 관련 범죄 등을 처리했습니다.

 

천주교 박해시기의 신자들은 서울의 좌우포도청과 지방의 각 진영 및 군현에서 문초를 받았는데요.

그들 가운데 중죄인 즉, 주교와 신부, 평신도 지도자들은 국왕의 특별한 명령에 따라 의금부로 압송되어 국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신해박해(1791) 때 한국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 베드로가 의금부에서 국문을 받았고, 신유박해(1801) 때 권철신 암브로시오, 주문모 야고보 신부, 최창현 요한 회장도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문초를 당했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 때에도 많은 국내외 천주교도들이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문초를 당했습니다.

 

 

이런 왕왕명 직속 사법기구를 둠으로써 왕권강화의 도구로 이용되었고, 조선시대의 신분제와 유교윤리를 지켜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근대 사법제도인 고등재판소, 평리원(대법원의 정신적 조상)으로 바뀌는 이행 전환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평리원이 있던 서소문 자리는 1928년 총독부에 의해 경성복심법원과 경성지방법원이 설립되었고, 이 건물은 해방 이후 한동안 대한민국 대법원으로 사용되다가,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면서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건물로 쓰이고 있습니다.

대심원은 1907년 종각 앞 구 의금부 터 바로 옆에 새 건물을 짓고 자리했는데, 해당 건물은 1957년에 헐렸고, 의금부와 대심원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SC제일은행 본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사권을 가진 국가원수 직속 사법기관이라는 점과 정적 제거를 위해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하는 등 현대사회에서 의금부와 비슷한 기관들이라면 아마도 중앙정보부와 안기부 등이 해당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정원의 수사권이 폐지된 이후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의금부와 유사한 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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