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본사 앞에는 작은 표석들이 여럿 놓여 있습니다.
무심히 지나치면 별 의미 없어 보이지만, 이곳은 사실 조선시대의 중요한 역사 현장이었던 자리입니다.
제생원터, 계동궁터, 관상감 터와 관상감 관천대와 더불어 또 하나의 흔적이 바로 사도시 터입니다.
사도시(司導寺)는 조선 시대 쌀, 콩 등 곡물과 장 등의 물건을 보관하던 관청이 있던 터입니다.
마치 현재의 기획재정부나 국토교통부처럼 국가 경제의 핵심을 담당했던 중요한 부서였답니다.
사자가 들어 있어 사찰처럼 느껴지지만, 사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관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농업 국가였고, 백성들이 내는 세금의 대부분은 곡물(쌀, 콩 등)이었습니다.
사도시는 이렇게 전국 각지에서 거두어들인 막대한 양의 곡물을 한양으로 운반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며, 필요한 곳에 분배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했던 것입니다.

사도시는 1392년(태조 1) 고려의 제도를 따라 요물고를 설치했고, 이후 공정고, 고관서오 바뀌었다가 사선서에 흡수된 후 사도시라 개칭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내내 운영되다거 1882년(고종 19)에 폐지되었습니다.
사도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전국에서 수확된 곡물을 세금으로 거두어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의 인구를 먹여 살리고,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는 데 곡물은 필수적이었죠.
지방에서 배나 수레를 통해 어렵게 운반되어 온 곡물들이 사도시의 거대한 창고에 가득 쌓였을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이곳은 단순한 창고가 아니라, 조선의 국고이자 경제의 척도와 다름없었답니다.

사도시에는 사, 부사, 주부 등을 두었는데, 태종 원년(1401) 7월 관제 개정 때 요물고는 공정고로 개칭되고, 공정고는 그 뒤 다시 사도시)로 개칭되었습니다.
사도시는 어름의 미곡, 궐내에 공급하는 장 등의 물품을 관장했고, 제조 1인과 정3품 1인, 종3품 1인, 첨정(종4품) 1인, 주부(종6품) 1인, 직장(종7품) 1인을 두었습니다.
오늘날 공무원들이 월급을 받듯, 조선 시대 관리들 역시 녹봉이라는 급여를 받았는데요.
당시에는 쌀, 콩 등의 곡물이 녹봉의 주된 형태였는데, 이 녹봉을 관리들에게 지급하는 역할 역시 사도시에서 담당했습니다.
또한 사도시는 단순한 재정 기능 외에도 백성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요.
가뭄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로 백성들이 고통받을 때, 사도시에 보관된 곡물은 이들을 구휼하기 위한 자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도 한양의 쌀값을 안정시키는 것도 사도시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였습니다.
사도시는 저장된 곡물을 적절히 풀어 시장에 공급함으로써 물가를 조절하고, 백성들이 안정적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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