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본사 앞에는 두 가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미 잘 알려진 조선시대 제생원 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계동궁터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궁중의 미곡과 장 등의 물건을 맡은 관청인 사도시 터가 있는 곳입니다.
현대의 고층 빌딩과 분주한 도로 한가운데 자리 잡은 이 터는, 조선시대 왕족이 살았던 궁궐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해주는 공간입니다.
계동이란 지명 역시 제생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요.
조선 초기 제생원이 있어 제생동이라 불렸고, 시간이 지나면서 제와 계의 발음이 혼동되어 계생동이라 불렸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계생동이 기생동과 발음이 비슷해 생자를 뺀 계동이라 불리며 현재에 이르고 있답니다.
계동궁은 조선시대 왕자의 거처, 즉 왕족의 별궁이자 주거 공간으로 지어졌던 곳입니다.
일반적으로 궁궐이라고 하면 경복궁, 창덕궁처럼 크고 화려한 건물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계동궁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생활 중심의 궁궐이었던 것입니다.
이곳에는 왕자와 그 일가가 생활하며 정치를 배우고, 의례와 학문을 익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계동궁의 위치와 이름은 ‘계동’이라는 지명을 따왔고, 조선 후기에는 왕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별궁 역할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계동 현대건설 모습
계동궁터는 사도세자(장조)와 후궁 숙빈 임씨 사이의 4남으로 정조의 이복동생인 연령군의 양손자 은신군의 제사를 지내는 종손인 완림군 이재원의 집이 있었던 곳입니다.
완림군 이재원 이후 후손들도 계속 이곳에서 살아서 연령군 가문의 종가가 된 곳입니다.
완림군 이재원은 고종의 사촌형이자 남연군의 손자, 흥선대원군의 조카이기도 합니다.
1884년(고종 21년) 12월 5일, 갑신정변 이튿날에 고종이 잠시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했는데요.
고종은 처음에 경우궁으로 갔다가 겨울철 난방 시설이 변변치 못해 경우궁을 떠나 이곳으로 다시 옮겼고, 이어 새로운 개화파 정부의 요인 명단을 여기서 발표했습니다.
집주인 이재원도 이때 영의정 벼슬을 받았다고 합니다.

계동궁에는 완림군 이재원, 이기용(이재원의 아들), 이해청(의친왕의 7남으로 이기용의 양자)이 3대에 걸쳐 살았다고 합니다.
이기용이 언제 계동궁을 떠났는지는 모르나, 1945년 10월 이전인 것으로 보입니다.
계동궁은 1960년대에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현재는 현대건설 사옥이 들어섰습니다.

오늘날 계동궁터는 눈에 보이는 건물은 없지만,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조선의 흔적을 떠올리게 해주는 소중한 역사적 공간입니다.
바쁜 현대 생활 속에서 잠시라도 이 터를 기억하고 둘러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500년 전 왕족과 백성들의 삶을 이어주는 역사적 연결고리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종로 한복판, 현대건설 본사 앞에서 마주하는 계동궁터는 이렇게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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