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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동 벽화마을에서 보는 여수와 이순신장군 이야기

by 가람풍경 2025.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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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는 우리 민족의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 본영(이전엔 순천)을 두고 조선 수군을 지휘하던 핵심 군사 거점이면서 해전에서 용맹을 떨쳤던 이순신 장군의 혼이 곳곳에 서려있기 때문입니다.

 

여수에서의 이튿날 고소동 천사벽화마을에 들렀습니다.

고소동 천사벽화마을은 여수시 중앙동과 고소동 일대의 언덕 마을로, 여수 바다와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과 골목마다 펼쳐진 벽화가 매력적인 곳입니다.

 

과거 오래된 주택과 좁은 골목길이 이어진 달동네였으나, 2007년부터 벽화와 조형물을 설치하는 마을 재생 사업이 시작되면서 ‘천사벽화마을’로 변모한 곳이죠.

 

진남관에서 고소동 벽화마을로 이동하니 벽화로 여수와 이순신장군의 관계를 벽호로 적은 부분이 있더군요.

이를 통해 여수와 이순신장군이 어떤 연관이 있는 정리 해 봤습니다.

 

고소동 천사벽화마을 모습

 

고소동 벽화마을은 마을 곳곳에 여수를 주제로 한 바다, 어업, 이순신 장군 관련 벽화뿐 아니라 포토존이 마련돼 있고요.

주요 전망 포인트에서는 돌산대교, 장군도, 오동도, 여수항이 시원하게 펼쳐져 특히 일몰과 야경이 아름답습니다.

 

느릿하게 골목길을 걸으며 벽화를 감상하고, 전망대나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이곳의 묘미입니다.

 

 

또한 고소동 벽화마을 정상부에는 이순신장군이 군령을 내렸던 고소대가 있는데요.

이곳엔 이순신 장군의 승리를 기린 보물로 지정된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부하들이 죽음을 슬퍼하며 세운 타루비가 있습니다.

고소동은 고소대가 있어서 고소동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정오가 되면 정오를 알리는 대포를 쏘던 오포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여수 시내와 여수바다 전망이 무척이나 매력적입니다.

 

여수 고소동 천사벽화마을, 골목골목 예술과 바다가 만나다

여수 이순신장군 유적지, 고소대와 통제이공수군대첩비, 타루비

여수 고소동 벽화마을, 오포대와 여수 전망

 

좌수영 수군 출전 해전일람

 

옥포해전 - 1592. 5. 7.
합포해전 - 1592. 5. 7.
적진포해전 - 1592. 5. 8.
사천해전 - 1592. 5. 29. (거북선 첫 출전)
당포해전 - 1592. 6. 2.
율포해전 - 1592. 6. 7.
당항포해전 - 1592. 6. 5.
안골포해전 - 1592. 7. 10.
한산대첩 - 1592. 7. 8.
부산포해전 - 1592. 9. 1.
명량대첩 - 1597. 9. 16.

절이도해전 - 1598. 7. 19.
장도해전 - 1598. 9. 20.
왜교성 전투 - 1598. 9. 20~10. 7.
노량해전 - 1598. 11. 19.

 

 

여수 앞바다는 남해와 서해, 일본으로 향하는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아서 조선 수군의 중심 기지로 삼았고, 한산도대첩과 명량해전 등 역사적인 승리를 거둔 곳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덕분에 여수에는 진남관, 선소 유적, 거북선 전시관 등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지뿐만 아니라 이순신대교, 거북선대교, 충민사 등 이순신장군과 관련된 명칭과 기념시설이 많은 곳이죠.

 

충무공 이순신 일대기(생애)

1545. 4. 28(음3.8) 서울 건천동 출생, 현) 서울 중구 인현동 1가 부근
1576. 2월(32세) 무과 급제, 12월 함경도 동구비 보권관 임명
1580. 7월(36세) 전라좌수영 발포 수군만호(종4품) 임명, 수군을 처음 경험
1591. 2월(47세) 전라좌수사 임명(정3품), 4월 거북선 최종 테스트 완료
1592. 4월(48세) 4월 13일 임진왜란 발발, 5월 7일 전선 24척으로 옥포해전 승리
1592. 5월 29일 2차 경상도 사천해전 출전 (왼쪽 어깨 관통상)
1592. 7월 8일 3차 한산대첩(적선 59척 격파), 녹도만호 정운 전사
1592. 8월 26일 4차 출전 부산포 공격(135척 격파), 정헌대부(종2품) 하사
1593. 8월(49세) 10월 9일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1596. 2월(52세) 부산포 출정 명령 거부로 파직, 원균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1597. 4월 어머니가 여수에서 뱃길로 아산 집으로 상경하다 배에서 사망
1597. 8월 3일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1597. 9월(53세) 9월 16일 명량해전(13척으로 133척 격파)
1598. 9~10월(54세) 9월 20일~10월 9일 진린의 명군과 순천 왜교성 지역해상 봉쇄작전
1598. 11월 9일 명군과 순천 왜교성 지역 해상 봉쇄
1598.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순국.

 

전라좌수 이순신 장군 여수에 오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가 된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 2월 13일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순천부사 권준을 만난 후, 성생원(율촌면)에서 쉬었다가 덕양역(소라면)과 석보창(여천동)을 거쳐 전라좌수영에 도착하였다.

 

바닷속에 쇠사슬을 설치하다

 

이순신 장군은 왜적의 감시와 전라좌수영을 향해 쳐들어올 경우를 대비하여 전라좌수영 부두의 동쪽 종포와 돌산도 사이의 바다를 가로지르는 쇠사슬을 설치하고자 성생원에서 돌을 떼어와 방어시설을 설치하였다.

 

거북선을 만들다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이 군관 나대용을 시켜 세계 최초 철갑 거북선 3척을 만들었다.

필요한 목재는 통선도, 금오도, 경도 등에서 베어와 사용하였다.

 

여수에서 출전하여 승리하다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뒤 1년 동안 온 힘을 기울여 경상도로 나아가 사울 때마다 크게 이겼다.

이 해전에는 전라우수영, 경상우수영 수군도 참전했으나, 주력부대는 전라좌수영 수군으로 이순신 장군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승리였다.

 

여수가 삼도수군통제영이 되다


1593년 8월 30일 이순신 장군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3도의 수군을 함께 이끌도록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었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서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게 되자 그의 본영이었던 여수의 전라좌수영은 자연히 삼도수군통제사의 본영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돌산 둔전을 일구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돌산 둔전을 일구었다.

이는 군량미 마련과 전쟁으로 인한 피난민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고자 한 것이며, 이러한 바탕 위에서 전라좌수영 수군은 계속하여 승리할 수 있었다.

 

난중에 어머님께 효를 다하다


이순신 장군은 1593년 팔순에 가까운 어머니를 고읍천(웅천동 승현마을) 정태수 장군의 집에 모시고 수시로 문안을 드렸다.

하루는 늙어가는 아들을 보며 슬퍼할 어머니를 생각하며 문안 가기 전 자신의 흰머리를 뽑았다고 한다.

 

왜적을 막으려 석인상을 세우다


이순신 장군은 군선들을 매어놓을 기둥이 밤에 왜적들에게 병사처럼 보여 접근을 막기 위해 전라좌수영 남문 밖 선소 등에 석인상 7개를 세워두었으나, 현재는 진남관 앞에 1개만 남아있다.

 

[여수 이순신장군 유적지]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의 객사 진남관과 진남관 임란 유물전시관

 

통제이공 수군대첩비와 타루비

 

통제이공수군대첩비(보물 제571호, 1615년)는 이순신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왕의 명을 받고 이항복이 비문을 지었다.

타루비(보물 제288호, 1603년)는 이순신 장군의 부하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세운 비석이다.


동령소갈비는 대첩비 건립 경위를 적은 비로 충무공이 300여년 있다가 일제강점기에 철거하여 경복궁 땅속에 감춰둔 것을 해방 후 찾아와 고소대에 세웠다.

 

충민사와 석천사를 세우다


충민사는 이순신 장군의 전사한 지 3년 만에 선조대왕의 왕명으로 세운 이순신 장군의 최초 사액 사당이다.
조선 수군의 본부였던 전라좌수영에 세워졌다는 점과 이순신 장군의 지휘 아래 싸웠던 현지 수군들이 사당을 세우는데 직접 참여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충민사 옆 석천사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며 충민사를 관리하고 제사했던 의승수군 옥형 등이 살던 암자였다.

 

거북선축제


이순신 장군의 호국정신을 이어받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1967년부터 매년 열리는 축제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 수군을 이끌고 첫 출전을 하였던 날을 기념하여 진남제라 하였고, 현재는 매년 5월 3일부터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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