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본사 앞에는 ‘제생원 터’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면 그냥 흔한 문화재 안내판쯤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곳은 조선시대 백성들의 삶과 건강을 지탱해 주던 중요한 기관이 있던 자리입니다.
바로 제생원(濟生院)이라는 곳인데요.
이름 그대로 ‘백성의 삶을 구제한다’는 뜻을 가진 곳이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제생원은 오늘날로 치면 국립병원과 사회복지시설을 합쳐놓은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당시에는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고, 전염병이 돌면 많은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었던 시절입니다.
게다가 기근이나 재해가 닥치면 굶주린 백성들을 돌볼 수 있는 제도가 절실했지요.
이런 배경에서 제생원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약을 나누어주고 치료를 베풀며, 고아나 의지할 데 없는 노인까지 보살피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계동은 조선 초기 제생원이 있어 제생동이라 불렸고, 시간이 지나면서 제와 계의 발음이 혼동되어 계생동이라 불렸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계생동이 기생동과 발음이 비슷해 생자를 뺀 계동이라 불리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네요.

조선 초기에 설치된 의료기관, 젝생원이 있었던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본사 앞
이곳엔 흥선대원군의 조카이자 고종의 사촌 형 이재원이 살던 집터인 ‘계동궁터’ 표지석도 있습니다.
계동궁 근처에 제생원과 승문원이 있었고, 1884년 갑신정변 때는 고종이 잠시 피신해 있기도 했던 곳입니다.
또한 천문, 지리, 역수에 관한 업무를 맡은 ‘관상감 관천대’와 궁중의 미곡, 장 등을 관리한 관청인 ‘사도시 터’ 역시 계동에 있습니다.
제생원은 태조 이성계의 여섯 번째 해인 1397년(태조 6년), 개국공신 조준의 건의로 세워졌습니다.
건국 초기, 새 왕조의 기반을 다지는 데 있어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했던 것입니다.
태조는 왕도정치의 구현을 위해 민생을 보살피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그 일환으로 백성들의 질병을 치료하고 빈민을 구호하는 기관인 제생원을 설립하게 됩니다.
6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곳입니다.
1401년(태종 1)에는 환자의 존귀 여부를 가리지 않고 왕진하여 치료하도록 했고, 1405년에는 병들어 오갈 데 없는 백성을 모아 보살피도록 했습니다.
1406년에는 동녀 수십 명을 택하여 맥경과 침구법을 가르쳐서 부인의 질병을 전문으로 치료하도록 했는데, 이것이 의녀 양성의 시초입니다.
1409년에는 별좌를 두어 귀천을 가리지 않고 병자를 치료하게 했고, 1412년에는 개천 작업에 동원된 역군들이 병이 있을 때의 전의감, 혜민국과 함께 약을 지어 치료하게 했습니다.
처음 설치될 때 지원사, 영, 승, 주부, 녹사 등의 관원이 있었고, 1414년에는 지원사, 승, 부령, 녹사, 부녹사 등이 있었습니다.
1460년(세조 6)에 혁파되어 혜민국에 합쳐졌습니다.

특히 제생원은 단순히 진료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의료, 구호 종합센터였던 셈이죠.
환자에게는 한약을 조제해 나누어주었고, 유랑하는 걸인에게는 숙식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보건위생을 관리하며, 전염병이 돌면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도 담당했습니다.
현대적인 개념의 보건소와 의료원, 그리고 구호소의 성격이 모두 담겨 있었다고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운영은 중앙에서 파견한 관리와 의관이 맡았는데, 의술을 행하는 의원뿐만 아니라, 약재를 관리하고 분배하는 약사 역할까지 함께 했습니다.
이곳에서 치료받은 이들은 대개 돈이 없거나 집안이 어려운 백성이었으니, 제생원은 가난한 사람들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국가가 직접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조선의 복지 제도는 당시로서는 꽤 앞서 있었다고 평가됩니다.

지금 계동의 제생원 터에는 건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작은 표석 하나가 당시의 흔적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바쁘게 오가는 도심 속에서 이 표석 앞에 잠시 멈추어 서면, 600여년 전 조선의 백성을 위해 존재했던 따뜻한 제도가 떠오릅니다.
우리는 흔히 조선시대를 신분사회, 엄격한 유교 질서로만 기억하지만, 그 안에서도 이렇게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구제한다’는 뜻을 가진 제생원이 있었다는 사실은 깊은 울림을 줍니다.
결국 제생원은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의료보험 제도나 복지 제도 역시, 제생원의 정신이 먼 뿌리에서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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