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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88타워 앞] 조선 국왕호위와 수도방위를 위한 군위영과 군위영터

by 가람풍경 2025.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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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위영은 조선후기 국왕 호위와 수도 방위를 위해 중앙에 설치한 군영을 말하며, 가장 늦게 설치된 오군영 중 하나입니다.

오군영은 훈련도감, 어영청, 총용청, 수어청, 금위영 등 조선후기의 다섯 군영을 말하며,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삼군문)은 한양도성을, 총융청은 북한산성, 수어청은 남한산성을 방어했습니다.

 

훈련도감 : 조선 후기 수도 한성부 방위를 위해 설립된 중앙군으로 조선 최정예 군영, 삼수병(포수/사수/살수) 양성
어영청 : 조선후기 왕을 호위하고 궁궐을 방비하던 국왕의 친위대로 만들어진 군영
총융청 : 조선후기 서울과 경기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중앙군, 특히 경기 북부, 북한산성 방어
수어청 : 조선후기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수도방어를 위한 군영
금위영 : 조선후기 한성 내부와 궁궐 방위, 야간 순찰, 왕실 호위 강화

 

1682년 김석주의 건의로 병조 소속의 정초군과 훈련도감 소속의 훈련별대 등을 합쳐 만든 군대인데요.

훈련도감과 어영청과 더불어 핵심군영으로 병조판서가 대장직을 겸직(경비 절감차원)했다고 합니다.

 

이후 1754년(영조)에 금위영 단독대장이 임명됨에 다라 단독 군영이 되었습니다.

주축을 이루는 병종은 6도 향군과 정기사, 별파진 등입니다.

 

하지만, 수도 방어의 군사력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나 이후 잡다한 병종과 원역 등이 늘어나서 재정 부족과 보인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켰다고 합니다.

 

종로 창덕궁 앞 옛 삼환빌딩(현 이노 88타워) 앞에 금위영 터가 있어 당시의 금위영에 대해서 정리했습니다.

 

금위영터가 있는 이노 88타워

 

안국역과 창덕궁을 지나는 율곡로 88에 자리하고 있어 접근성과 지하철 1~2분에 이용할 수 있는 요지입니다.

예전에 삼환건설이 입주해 있는 삼환빌딩인데, 1년 여의 리모델링을 통해 이노88타워로 바뀌었습니다.

기존 삼환빌딩은 1980년에 완공된 건물로 45년 만에 새 모습으로 바뀐 것입니다.

 

기존 건물은 그대로 두고, 앞과 뒤에 신축 건물을 이어 만들다 보니 건물 규모가 2배 이상 커진 것 같습니다.

지하 3층 ~13층 규모로 층당 600여평 정도 되는가 봅니다.

 

개발 주체인 스위트스팟은 이노88타워의 가치상승을 위해 소유주인 케펠자산운용과 함께 기존 한 개층이었던 상업시설을 지하 1~3층까지 총 4개 층으로 확대했다고 합니다.

 

창덕궁이 앞에 있어 유동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곳인데 카페와 다이닝 등 매장이 들어선다면 주변 상권을 흡수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 같습니다.

인사동과 삼청동 드리고 익선동과 가까운 장점을 살리면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디넷코리아, 스위트스팟, '이노88 타워' 밸류애드 프로젝트 착수 기사 인용)

 

이노88타워 앞에 있는 금위영터 표지석

 

'임진왜란 이후에 설치된 군영의 하나인  군영터.

대궐의 경비와 서울 남쪽의 수비를 맡았는데 광복 후에 국립국악원이 있었다.'

 

금위영은 어영청보다 늦게 만들어졌지만 훈련도감의 병력이 기간병이 되었다는 근거로 어영청보다 앞서는 것으로 대우받기도 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집권시기 왕권강화의 측면에서 일시적으로 그 위상이 강화되기도 했으나, 고종의 친정 이후 다시 원상 복귀되어 1881년 장어영으로 통합되었다가 1895년에 폐지되었습니다.

 

어영청과 비슷한 수준의 병력을 보유하였으며, 주력은 5초 (5개 중대급)의 번상정군이었고, 그 수가 625명이었습니다.

이들은 거의 포수였을 것으로 짐작되며, 번상정군 외에도 교대 없이 복무하는 기병인 기사 150명, 별무사/별효위 62명, 번상하는 별파진과 겸별파진 50명 등, 여러 잡다한 병종들도 포함하여 그 수가 약 3,000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어영청과 마찬가지로 반란 진압의 선봉으로 활용되어 유사시 순무영을 형성하였으며 이인좌의 난, 홍경래의 난 등에 투입되어 반란군을 진압한 바 있습니다.

(나무위키 인용)

 

 

북한산에는 북한산성 금위영이건기비가 있습니다.

1711년(숙종 37) 중앙군영을 동원하여 북한산성을 축성하고, 현지 주둔부대인 유영을 두어 산성의 수비를 구간별로 나누어 맡게 했습니다.

 

이 삼군문의 유영 중 금위영 유영만이 높은 곳에 위치하여 비바람에 무너질 위험이 있어서 1715년(숙종 41) 지금의 대종문 근처에서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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