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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역사 표지석] 충훈부터

by 가람풍경 2025.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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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충훈부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이나 그 자손을 대우하기 위해 설치하였던 관청입니다.
 

조선 개국 초기에는 공신도감, 충훈사 등으로 부르다가 세조 때 충훈부로 변경했고, 당상관인 군과 경력(종4품), 도사(종5품)의 관직을 배정했습니다.초기에는 당산관의 정원에 제한이 없었으나, 후기의 대전통편에 이르러 정원을 3명으로 임명하는 한편, 경력의 관직은 폐지하고 도사는 공신의 자식을 등용했습니다.(충훈사는 대군과 부원군의 아문이기도 했음)

 

충훈부는 1894년 기공국으로 개편하여 의정부에 소속시켰습니다.기공국은 조선 후기 의정부에 속한 관청으로 공신의 훈공을 기록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충훈부터는 현재 북인사마당 안내소가 있던 자리입니다.
 
공신도감은 1392년(태조 1) 8월 태조 때 설치되어 개국공신에게 영작과 토지, 노비 등을 주고 그 자손들에게도 영예와 음덕이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1405년(태종 5) 공신도감을 이조에 소속시키고, 1414년 관제를 고쳐서 녹사를 승, 부녹사를 녹사로 하고, 1417년 처음으로 공신도감에 유사를 두어 이보다 상위직으로 사, 부사를 두었습니다.

1434년(세종 16) 공신도감을 고쳐 충훈사로 개칭하고, 관원도 4품으로 지사를 삼고, 5품으로 도사로 삼되 모두 구전으로 하여 참외는 승·녹사의 이름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충훈부 터 역시 여러 차례 변동이 있었고, 중종 이후부터는 현재의 인사동길 북단(북인사마당) 바로 남쪽에 있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 시기에 표훈원 청사 자리로 사용되다가 일젝강점기에 민다 필지로 분할되었습니다.
 
표훈원은 1899년 대한제국 시기에 존속했던 행정기관이었는데요.
표창과 상훈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던 곳이었습니다.
1910년 한일 병합조약으로 대한제국이 소멸되면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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