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는 조선이 한양을 수도로 정한 1394년 이후 조선왕조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축이었고,
현재도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 등을 비롯해 조선시대의 역사유적이 즐비한 서울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종로를 걸어 다니다 보면 곳곳에 조선시대부터 근대시대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곳에 역사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종로구를 돌아다니면서 만나게 되는 역사 표지석에 대한 포스팅을 하나씩 해볼까 합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역사 표지석으로 사포사터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조선시대의 사포서는 왕실 소유의 채소밭과 과수원을 관리하던 조선시대의 관아를 말합니다.
침장고라고 하는 곳을 세조 12년(1466)에 사포서로 개칭한 것인데요.
침장고는 조선 초기에 궁중과 제향에 쓸 채소를 공급하고, 궁중에서 먹는 채소와 김장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를 말합니다.
관원에는 제거, 별좌, 별감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원래 서포서는 북부 준수방(통인동)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이전했던 것입니다.
사포서에서는 겨울에도 온실을 만들어 야채를 경작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천장에는 기름먹인 한지를 바르고, 바닥엔 온돌을 깔아 만들었다고 하며, 물을 끓여 습도를 조절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사포서 관원으로는 제조 1인, 사포(정6품) 1인, 별제(6품) 2인, 별검(8품) 2인 등이 근무했고, 별제 이하 7명이 근무했습니다.
이후 사포와 별검은 없애고 별제도 1인을 감했고, 숙종 30년인 1704년 직장 1인이 추가됐으며, 이듬해 다시 봉사 1인을 뒀습니다.
경종 1년인 1712년에는 사포서에서 화재가 발생해 집무실인 서사와 창고가 모두 불에 타기도 했습니다.
제철 채소와 과일을 왕실에 공급하는 과정에서 간혹 실수로 누락하거나 상한 작물을 올려 관리가 처벌받는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사포서의 논과 밭은 개인에게 임대해 소작을 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고, 직접 재배하기 어려운 작물은 공납으로 징수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과중한 공납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는데요.
일부 관제개편에 따라 고종 19년(1882)에 폐지되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사포서터는 서울지방국세청, 국세홍보관 바로 옆 화단에 있습니다.
(서울경제 - 역사의 향기/표지석] <31>사포서(司圃署))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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