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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의 집터에서 만나는 개화의 꿈, 갑신정변 주역 김옥균의 생애

by 가람풍경 2025.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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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교육청 정독도서관 앞, 서울교육박물관 뒤쪽 잔디마당엔 갑신정변으로 3일간 정권을 잡았던 개화의 꿈을 간직했던 김옥균의 집터가 있습니다.

 

김옥균(1851~1894)은 조선 말기의 개화파 정치가이자 사상가로, 갑신정변(1884)의 주도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그는 친일파로 보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급진개화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정치, 사회 개혁을 추진했던 개화파의 선구자였습니다.

 

김옥균 집터에서 만나는 개화의 꿈,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김옥균의 생애를 정리했습니다.

 

정독도서관, 서울교육박물관 뒤편에 있는 김옥균 집터 표지석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고균 김옥균의 집이 있던 곳(종로구 화동 260번지)으로 갑신정변을 논의하던 곳입니다.

구한말 화동 일대는 서재필을 비롯한 개화파 고위 관료들이 거주하는 등 당시로서는 최고의 주거지가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박영효, 서재필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켜 3일 동안 정권을 장악했으나, 청나라 군대 개입으로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했는데요.

역적으로 몰려 일본에서 암살당한 후 조선으로 송환되어 능지처참을 당한 후 전시당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흉가로 방치되던 김옥균과 개화파들의 집은 쓰러져 헐리게 되었고, 1900년 한성중학교(경기중.고등학교 전신)가 설립되면서 학교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후 경기고는 이전했고, 그 자리에 정독도서관이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정독도서관 잔디마당 모습

 

정독도서관은 서울특별시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시립도서관으로 1800년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설립한 최초의 근대식 중등학교인 관립중학교가 있던 우리나라 관학 중등교육의 발상지에 있습니다..
 
1900년에 관립한성고등학교, 경성고등보통학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경기공립중학교, 경기고등학교와 경기중학교 등의 교정으로 사용하다가 1971년에 경기중학교는 폐교됐고, 1976년에 경기고는 삼성동으로 이전했습니다.

서울교육박물관은 정독도서관에서 설립한 부설 교육전문 박물관으로, 우리나라 교육의 발전 모습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 1995년에 오픈한 교육박물관인데요.
삼국시대부터 현재까지의 교육제도와 교육과정, 교육내용, 교육기관, 교육활동 등에 관한 유물과 사진 등 각종 자료들을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서울 정독도서관 풍경 및 이용안내(주차장, 구내식당 소담정 등)

추억이 새록새록, 서울교육박물관(in 북촌한옥마을)

 

사진출처 : 나무위키

 

김옥균의 생애(일생)

 

김옥균(1851~1894)은 조선 말기의 정치가이자 개화운동가로, 갑신정변(1884)을 주도한 급진개화파의 핵심 인물입니다.

조선의 봉건 체제를 타파하고, 일본과 서양의 문물을 도입해 근대적인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1. 출생과 성장 (1851~1870년대)
김옥균은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인정받았고, 22살에 문과에 장원급제했습니다.

전통 유학을 공부했지만, 점차 조선의 폐쇄적 체제에 한계를 느끼고 개혁과 변화에 눈을 뜹니다.

 

2. 개화사상 수용과 활동 (1870년대 후반~1880년대 초)
청나라와 일본을 시찰하며 서양 문물의 실체를 직접 목격한 김옥균은, 조선이 외세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근대적 개혁이 필수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박영효, 서재필 등과 함께 급진개화파를 형성해 문벌 철폐, 신분제 폐지, 군제 개혁 등을 추진하려 합니다.

 

3. 갑신정변과 3일 천하 (1884)
1884년, 김옥균은 일본 공사관의 도움을 받아 정변을 단행합니다. 

새 정부를 세우고 14개조 개혁안을 발표하지만, 청나라 군대가 개입하면서 정변은 단 3일 만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김옥균은 가까스로 일본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4. 망명과 외로운 개혁 외교 (1885~1894)
망명 후 일본에 머무르며 외교 활동과 글쓰기를 이어 갔습니다.

그는 조선의 독립과 근대화를 위해 다양한 인물들과 교류했지만, 조선 정부는 그를 역적으로 규정하고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5. 암살과 비극적 최후 (1894)
1894년 3월, 일본 도쿄에서 홍종우에게 암살당한 김옥균. 그의 시신은 조선으로 옮겨졌고, 능지처참형을 당합니다. 

한때 조선의 미래를 꿈꾸었던 개혁가는 그렇게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사진출처 : 나무위키

 

갑신정변에 대하여


조선 말기, 서양의 문물이 급속도로 밀려들며 시대는 급변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조선도 개혁을 외치던 젊은 지식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 급진개화파였고, 그들이 단행한 개혁의 첫 시도가 바로 갑신정변(1884)입니다.
불과 3일 만에 끝난 ‘3일 천하’였지만, 이 사건은 조선 근대화의 출발점으로 평가받습니다.

 

당시 조선은 청나라의 내정 간섭과 보수적 민씨 정권의 부패로 인해 변화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었고, 개화파들은 서양의 제도와 기술을 적극 받아들여 조선을 개혁하자는 주장을 펼치게 됩니다.
온건개화파가 청나라를 중심으로 신중한 개혁을 추구했다면, 김옥균 등의 급진개화파는 일본의 힘을 빌려 빠르고 강한 개혁을 추진하려 했습니다.

 

1884년 12월 4일, 김옥균은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계기로 정변을 단행하는데, 고종을 안전한 곳으로 모시고, 개혁 내각을 수립합니다.

온건개화파였던 윤태준, 한규직 등의 영선사 출신과 민영복, 민태호 등 개화에 적극적이었던 사람들을 살해하죠.


정변은 노비제와 과거제 폐지, 내각제 도입, 군제 개편 등을 추진하지만 청나라가 즉각 군사 개입하면서 정변은 불과 3일 만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개화파에서 내놓은 개혁 정강 14개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문벌 폐지와 인민 평등
2) 과거제 폐지, 능력 중심 인재 등용
3) 내각제 도입, 왕권의 절대성 완화
4) 조세 개혁 및 재정 일원화
5) 일본식 군제 도입과 신식 군사 조직

 

갑신정변이 일어났던 우정총국은 조계사 옆에 아직 남아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이자 갑신정변의 현장, 서울 우정충국 (체신기념관)

 

 

감신정변은 혁신적이었지만, 대중적 지지 기반이 약했고, 외세에 의존한 점이 치명적인 약점이었습니다.

정변은 실패했지만,  조선 역사상 최초의 체계적인 근대 개혁 시도였습니다.


갑신정변은 이후 갑오개혁, 독립협회 운동, 헌의 6조, 대한제국 수립 등으로 이어지는 근대화 흐름의 촉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옥균의 집터를 거닐다 보면, 조국의 근대를 고민했던 그들의 절실함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갑신정변은 3일로 끝났지만 조선의 미래를 여는 씨앗이었습니다.

 

그날의 개혁 정신을 오늘 다시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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