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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을 꿈꾸던 자리, 효사정공원에서 만난 심훈의 발자취

by 가람풍경 2026.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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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날 오후, 자전거 라이딩하다가 날씨가 좋아서 효사정공원을 찾았습니다.

 

효사정은 조선시대 우의정을 지낸 공숙공 노한(1376~1443)의 별서가 있던 정자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를 했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효사정은 효의 상징으로 통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한강 뷰가 너무 아름다운 전망명소입니다.

 

서울 한강뷰 숨은명소, 효사정공원의 효사정

 

 

효사정공원 아래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저항정신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소설가이자 시인 그리고 영화인이기도 했던 심훈(1901~1936)의 조각성과 시비가 있습니다.

효사정에 심훈의 조각상과 시비가 있는 이유는 효사정이 있는 흑성동에서 그가 태어나 그의 인생 상당 부분을 이곳에서 지냈기 때문입니다.

 

효사정공원에서 만난 심훈의 시비를 통해 그의 발자취와 시를 알아보겠습니다.

 

효사정공원 남쪽 아래에 마련된 효사정 문학공원

 

심훈은 당시 경기도 시흥군 북면 노량진리 검은돌집(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1901년 태어나, 그의 인생 상당 부분을 이곳 흑석동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정확히 심훈이 태어난 곳은 남쪽에 있는 천주교 흑석동성당 자리이며, 이곳에 심훈생가 터가 있습니다.

 

 

다음은 효사정과 용양봉저정공원에서 바라본 한강풍경을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심훈은 1901년 9월 12일, 흑석동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고, 본명은 심대섭, 호는 해풍입니다.

아버지 심상정은 보통학교 교장과 신북면장을 역임했고, 외조부 윤현구는 조선말 3대 문장가인 윤희구의 막내로 시, 문, 화에 능했습니다.

 

큰형 심우섭은 휘문의숙 1회 졸업생으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기자와 경성방송국 과장을 지냈고, 작은형 심명섭은 동경 청신학원 졸업 후 심훈의 미완성 소설인 '불사조'를 완성하고 시집 '그날이 모면'을 발간했습니다.

 

1915년 심훈은 서울 교동보통학교를 졸업 후 경성 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에 입학했습니다.

1917년 3월에 왕족 이해영과 결혼했고, 학교에서 수학선생의 민족차별에 대한 항거로 시험 때 백지를 내 유급되기도 했습니다.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때 3.1 운동에 참가하여 3월 5일 투옥되었다가 11월에 출소했는데요.

이때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을 썼는데, 이 편지는 문인으로서 심훈의 민족의식을 나타낸 첫 작품이었습니다.

 

1920년 심훈은 중국으로 망명 유학길을 떠나 여러 우국지사글과 교우하며 1921년 북경에서 상해, 남경 등을 거쳐 항주의 기장대학에 입학, 수학했습니다.

 

특히 심훈은 국내 및 만주, 중국본토 등에서 독립운동을 한 대표적인 사람인 우당 이회영의 집에서 2개월여를 지냈는데요.

민족주의와 학구열이 왕성한 19세 심훈과 인격과 학식을 갖추고 민족독립운동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던 53세의 완숙의 우당 이회영과의 만남은 훗날 심훈이 민족적 애국주의의 시와 농민소설을 집필하는데 중요한 사상적 토대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1923년 중국에서 지강대학을 중퇴, 귀국해서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와 학예부장을 했고, 이해영과 이혼 후 '미인의 恨'이라는 외국 장편소설의 후반부를 번안하여 연재했고, 영화 '장한몽' 주역인 이수일 역의 후반부를 대역하기도 했습니다.

1926년에는 최초의 영화소설 '탈춤'을 동아일보에서 34회 연재했습니다.

 

1927년에 마침내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직접 원작, 각색, 감독해 단성사에서 개봉했고, 당시 아리랑에 이어 한국영화 개척기의 또 하나의 명장이란 평을 얻었습니다.

이후 심훈은 수많은 시나리오와 영화평론을 남겼지만, 직접 연출한 건 '먼동이 틀 때' 한 편 뿐이었습니다.

 

1927년 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일활촬영소에서 6개월간 영화를 공부한 후 기자로 입사하여 여러 편의 영화논평을 작성했습니다.

1930년에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인 '그날이 오면'을 발표했고, 안정옥과 재혼, 1931년에 장편소설 '불사조'를 발표했습니다.

 

1932년 일제의 탄압으로 부모님이 살고 있던 당진으로 이사해 창작활동에 전념했습니다.

봄의 서곡 '영원의 미소(1933)'를 발표했고, '직녀성(1934)'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여 그 원고료로 부곡리에 집을 지어 필경소라 불렀습니다.

그의 재표 소설 '상록수'는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현상모집 당선작이었습니다.

 

1936년 8월 16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우승에 감격하여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즉흥시를 마지막으로 남겼습니다.

이때 전국적으로 퍼진 장티푸스레 갈려 9월 16일 36세로 세상일 떠나고 말았습니다.

 

심훈의 조각상이 있는 곳에서 바라본 한강 모습

 

심훈 선생이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를 넘어 오늘날까지 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의 삶과 예술이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터널 속에서 꺼지지 않는 희망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3.1 운동에 직접 참여했고, 시 '그날이 오면'을 통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가장 뜨겁게 분출한 실천적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소설 '상록수'를 통해 민중 속으로 들어가 문맹 퇴치와 농촌 개혁을 주도했던 브나로드(V-narod) 운동을 역사적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아울러 '탈춤', '먼동이 틀 떼' 등을 통해 한국 영화사와 신문학의 개척자였고, 시대를 앞서간 '청년 정신'과 열정을 보여준 인물이었습니다.

 

심훈은 이후 건국훈장 애국장에 서훈되었는데요.

그런데 형인 심우섭과 심명섭 등이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되어 있고, 첫 아내인 이해영의 남동생 역시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청풍군 이해승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일가에 많았다고 합니다.

 

효사정 아래 산책로에는 심훈의 시비가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처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꺼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시 '그날이 오면'은 조국 광복에 대한 절실한 염원을 파격적인 자기희생의 시어로 형상화한 저항 문학의 정수입니다.
자신의 몸을 가죽 삼아 북을 만들겠다는 치열한 의지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불굴의 독립 정신을 상징하며, 오늘날까지도 시대를 초월한 뜨거운 감동과 인문학적 가치를 전해줍니다.

 

기적 - 심훈

 

깊은 밤 캄캄한 하늘에
길게 우는 저 기적소리
어디로서 오는 차인지
그는 몰라도
만나서 웃거나 보내고 울거나
나는 몰라도
간신히 얻은 고운 임의 꿈을
행여 깨우지나 말아라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내는 희망과 변화를 주제로 한 작품입니다.

 

밤 - 심훈

 

밤 깊은 밤
바람이 뒤설레며
문풍지가 운다.
방 텅 비인 방안에는
등잔불의 기름 조는 소리뿐

​쥐가 천정을 모조리 써는데
어둠은 아직도 창밖을 지키고,
내 마음은 무거운 근심에 짓눌려
깊이 모를 연못  속에서 자맥질 한다. 

아아, 기나긴 겨울밤에
가늘게 떨며 흐느끼는
고달픈 영혼의 울음소리
별 없는 하늘 밑에 들어 줄 사람 없구나! 

 

 

이 시는 일제강점기라는 암담한 현실을 '밤'으로 형상화하여, 지식인이 겪는 고독과 번민을 고백적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첫눈 - 심훈

 

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립니다.
삼승버선 엎어 신고 사뿟사뿟 내려 앉습니다.
논과 들과 초가집 용마루 위에
배꽃처럼 흩어져 송이송이 내려 앉습니다.

조각조각 흩날리는 눈의 날개는
내 마음을 고이고이 덮어 줍니다.
소복 입은 아가씨처럼 치맛자락 벌리고
구석구석 자리를 펴고 들어앉습니다.

그 눈이 녹습니다, 녹아내립니다.
남몰래 짓는 눈물이 속으로 흘러들 듯
내 마음이 뜨거워 그 눈이 녹습니다.
추녀 끝에, 내 가슴 속에, 줄줄이 흘러 내립니다.

 

 

첫눈이 주는 맑고 고요한 정서를 통해 삶의 피로를 씻어내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과 순수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 서정시입니다.

 

 

효사정 서울 동작구 현충로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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