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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삼릉] 공릉, 예종의 비 장순왕후의 단릉(조선왕릉)

by 가람풍경 2026.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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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깨끗하고 모처럼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 파주 삼릉으로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파주 삼릉은 조선 8대 임금인 예종의 비인 장순왕후의 단릉인 공릉, 9대 임금인 성종의 비인 공혜왕후의 단릉인 순릉, 정조를 양자로 받아들여 왕위에 오른 후 추존된 진종(효장세자)과 효순소왕후의 쌍릉인 영릉 등이 있습니다.

 

[파주 삼릉] 역사문화관 및 관람정보 (공릉, 순릉, 영릉)

[파주 삼릉] 순릉, 성종의 비 공혜왕후의 단릉(조선왕릉)

[파주 삼릉] 영릉, 추존 진종(효장세자)과 효순왕후의 쌍릉(조선왕릉)

 


여기서는 조선 제8대 임금이었던 예종의 첫 번째 부인인 장순왕후의 단릉, 파주 삼릉 공릉 모습을 담았습니다.

 

파주 삼릉, 공릉 가는 길

 

공릉은 조선 제8대 왕 예종(1450~1469, 재위 1468~1469)의 첫 번째 왕비인 장순왕후 한씨(1445~1461)의 능입니다.

장순왕후는 조선 세조가 왕위에 오르게 된 계유정난의 공신인 한명회의 세 번째 딸입니다.

 

 

한명회(1415~1487)는 부모를 여위고 불우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매번 과거에 실패하다가 단종이 즉위하면서 친구인 권람을 통해 수양대군에게 접근했다고 합니다.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의 심복 참모로 공을 세웠고, 이후 그는 출세가도를 달리며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 등 삼정승을 두루 거쳤습니다.

 

아울러 당시 세조는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권력가였던 한명회와 사돈관계를 맺길 원했습니다.

이에 1460년(세조 6) 그의 아들 예종(당시 해양대군)과 셋째 딸을 혼인시켰고, 1467년(세조 13)에는 18살의 나이에 죽은 장남 의경세자의 아들인 자을산군(후 성종)과 넷째 딸인 공혜왕후와 혼인을 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한명회는 조선시대에서 유일하게 두 왕의 장인이 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공릉의 주인공인 장순왕후(1445~1461)는1460년(세조 6) 예종이 왕세자였을 때 빈으로 책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1461년 원손(인성대군, 1463년 2살로 요절)을 낳자마자 16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1468년 예종이 왕위에 올랐지만, 다음 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장순빈은 왕비로 추존받지를 못했는데요.

1470년 제9대 임금으로 성종이 즉위하면서 장순빈의 신분을 장순왕후로 높였고, 묘도 '공릉'으로 고쳐 부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능침은 왕릉의 격식에 맞게 새로 꾸미지 않아서 세자빈 묘의 형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요.

석실로 꾸며져 있고 병풍석과 난간석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공릉 정자각과 비각

 

 

조선 8대 임금이었던 예종(1468~1469)은 세조의 둘째 아들(해양대군)으로 형인 의경세자가 죽자 세자에 오른 후 임금이 되었는데요.

건강이 좋지 않아 재위기간이 1년으로 무척 짧았습니다.

뒤이어 조카(형인 의경세자의 아들)가 성종으로 왕위에 올랐고, 어머니인 정희왕후의 섭정이 이어졌습니다.

 

타살을 당한 단종을 제외한 역대 조선 왕 중 자연사 기준으로 가장 단명했고, 인종 다음으로 제위기간이 가장 짧은 왕이 된 것입니다.

 

정자각으로 가는 길에는 신도와 어도가 있는데요.

신도는 신이 다니는 길, 어도는 임금이 다니는 길을 의미합니다.

 

정자각 앞 좌우로 수라청과 수복방이 있고, 옆에는 비각이 있습니다.

수라청은 재실에서 준비한 제례음식을 데우고 진설하는 곳이고, 수복방은 능원을 지키는 사람의 공간입니다.

 

공릉 정자각

하늘에서 보면 정(丁)자를 닮았다고 해서 정자각이라 부르며, 이곳에서 제를 올립니다.

 

공릉 기신제

매년 1월 14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네요.

 

공릉 진입로 모습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와 어로는 지형에 맞게 조성하여 한 번 꺾여있습니다. 

 

파주 삼릉, 공릉 모습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했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석양과 석호 각 1쌍만 배치하여 간략하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정순왕후의 일대기를 적은 공릉 비각

1817년에 공혜왕후 순릉 표석과 함께 건립되었고, 앞면의 전서는 박윤수가, 뒷면의 음기는 김시근이 쓴 것입니다.

 

 

다음은 파주 삼릉 - 공릉, 순릉, 영릉의 모습을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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