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강물처럼 흐르는 일상
여행, 요리 맛집, 카페

안국동 윤보선 가옥(윤보선가), 조용한 골목에서 만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흔적

by 가람풍경 2026. 1. 5.
728x90
반응형

복잡한 현대식 빌딩이 즐비한 종로구 안국동, 안국역 1번 출구의 좁은 골목길(윤보선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시간이 멈춘 듯한 거대한 대문 하나(안국동 8번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지낸 해위 윤보선 전 대통령이 살았던 안국동 윤보선가(윤보선 가옥)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한 전직 대통령의 집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논의되었던 역사적 현장이자 서울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민가 중 하나인데요.
격동의 시기였던 1960년대와 70년대, 야당 정치인들의 주요 회합 장소로 이용했던 곳이라 '안국동 공화당'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담벼락 너머로 들려오는 듯한 역사의 속삭임은 방문객들에게 묘한 경건함을 선사하는 곳인데요.

윤보선 전 대통령이 영국 유학 이후 귀국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았던 주택이며, 지금은 윤보선 후손들이 살고 있는 집이라 개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현재는 서울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습니다.

 

안국동 윤보선가 담벼락

 

윤보선 가옥은 187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1870년대에 민영익의 아들 민규식이 지은 집으로 알려져 있고, 그 후 고종이 이 집을 사서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금릉위 박영효에게 하사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주인이 바뀌었다가 윤보선 전 대통령 선친인 윤치소가 매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912년부터 맞은편에 있는 안동교회 장로가 되면서입니다.
안동장 또는 안국동 사저로도 부르고, 경내가 넓어서 일명 안동궁으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은 전통과 근대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조선 후기 양반가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정원 곳곳에는 중국식이나 서양식 정원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양반 가문의 특징과 일찍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종교적 색채, 가문의 많은 사람들이 해외 유학을 경험한 덕택에 서양문화를 접하면서 개화된 집안분위기가 엿보이는 가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옥의 기본 골조를 유지하면서도 창호나 내부 장식에서 근대적인 변화를 엿볼 수 있어, 구한말 상류층 주택의 변천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랑채인 '산정채'는 윤보선 전 대통령이 정치 활동을 하던 당시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드나들던 곳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산실과도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1980년 ‘서울의 봄’ 때에는 해위 윤보선이 김영삼, 김대중씨에게 야당후보 단일화를 당부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사진 출처 : 윤보선 기념사업회

 

윤보선 가옥은 ‘ㄷ’자형 구조의 전통 한옥으로, 사랑채와 안채, 사랑마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대지 1400평에 99칸의 대저택이었다고 하나, 6.25 전쟁 때 일부 소실되어 현재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윤보선은 1897년 충남 아산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일찍이 일본과 중국을 거쳐 영국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당대의 엘리트였습니다. 
해방 후 정계에 입문하여 서울특별시장과 상공부 장관을 역임하며 행정가로서 자질을 보였습니다. 

그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1960년 4.19 혁명 이후였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뒤, 그는 내각책임제 하의 제2공화국에서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집권 1년도 채 되지 않아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고, 그는 군부의 압박 속에서 하야와 복귀를 반복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결국 1962년 대통령직을 사임한 그는 이후 평생을 재야의 거목이자 선명 야당의 지도자로 살았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두 차례 대선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에 맞서는 야권의 상징적 인물로 활약했습니다. 
유신 체제 아래에서는 민주 구국선언 등에 참여하며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재판을 받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그는 1990년 서거할 때까지 전통적인 유교적 선비 정신과 영국식 의회 민주주의 신념을 잃지 않았던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삶은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온 뒤에도 민주주의를 향한 쉼 없는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사에 깊은 족적을 남겼습니다.

 

현재 정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골목

 

윤보선 고택은 예전의 모습과 현대 생활에 어울리는 주택으로 남아 있으며 대저택의 품위와 위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고택 안채에서 안동교회의 장로이며, 윤보선 대통령의 장남인 윤상구씨 가족이 4대째 터전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728x90
반응형